기원전 4세기경 중국에서 발명된 장난감 중 하나로 꽈배기 모양의 플라잉 프로펠러 팽이가 있습니다. 이 장난감은 가느다랗고 긴 막대기 위에 다양한 각도를 가진 깃털이 달려 있었으며, 여기에 줄을 이용하거나 손으로 막대기로 회전시키면 각도에 의해 스스로의 에너지로 비행하는 최초의 장치였는데, 이 장난감이 바로 수직 비행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공중으로 떠오를 수 있는 에어스크류와 같은 나선형 기구 형태의 그림을 통해 헬리콥터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세기에 거쳐 위로 떠오르는 힘인 양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에어스크류, 즉 로터의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1784년, 미카엘 로모노소프라는 한 러시아의 과학자가 작은 사이즈의 스프링 모터를 작동하여 스스로 공중으로 뜰 수 있는 물체를 개발 및 실현시켰고, 이것이 최초의 에어스크류 모델이라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후 헬리콥터의 개념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장비들이 유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프랑스의 자연주의자 중 한 명인 로노이는 두 개의 로터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켜 돌아가는 작은 모델을 만들었는데, 이 모델은 처음으로 토크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항공 과학자인 조지 케일리는 1840년대에 비행이 가능한 모델 중 몇 가지를 실 모형 크기의 헬리콥터로 설계했습니다. 그는 천으로 만든 기체 양 끝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여 역회전하는 로터를 두 개씩 장착하였고, 기체의 뒤편에는 수평 비행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푸셔형 프로펠러를 두 개 장착했습니다. 비록 이 단계에서 케일리는 그가 만든 로터를 움직일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진 동력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설계 및 디자인 단계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이 설계가 현대 헬리콥터의 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이후에 제작된 몇몇 헬리콥터는 실제 케일리가 최초로 제안했던 이 개념을 적용시켜 제작하기도 하였습니다.
1878년, 이탈리아의 교수이자 발명가였던 엔리코 폴라니니는 증기기관을 이용해 움직이며 날아다닐 수 있는 작은 헬리콥터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으며, 이는 약 12m의 높이에서 20초 동안 비행을 유지했습니다. 이후 1880년대에는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발명가 에디슨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는 전기 모터에 의해 구동되어 움직이는 수직축 위에 테스트용 로터를 설치해 거기서 발생하는 양력을 측정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 기존 엔진은 로터 설계와 상관없이 일정량의 양력이 발생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기존보다 강력한 엔진을 개발하고자 여러 시도와 노력을 반복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20세기 초, 여러 학자들은 헬리콥터 개발의 성공을 방해하는 유일한 장애물은 적절한 추진기관의 부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900년대 초, 기존 대비 더욱 강력한 가솔린 엔진의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그와 함께 라이트 형제는 최초의 유인 동력 비행을 1903년에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덧붙여 헬리콥터의 성공적인 비행 또한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후 1907년 8월, 프랑스의 루이 브릿지와 폴 코누스에 의해 헬리콥터가 개발되었고, 이는 대략 2분 동안 0.6m 높이를 유지하며 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브르귀는 헬리콥터 두 대를 추가로 제작하여 비행을 시도했으며, 노력한 결과 1908년에는 높이 4.5m까지도 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헬리콥터 제어 및 조종 능력이 미흡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브르귀는 1930년대에 다시 헬리콥터로 돌아오기 전까지 고정익기 개발에 관심을 돌려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1907년 11월에는 꼬르뉘가 제작한 헬리콥터가 20초 동안 높이 0.3m에서 1.5m 높이까지 날아올랐습니다. 이는 헬리콥터가 처음으로 진정한 자유롭게 비행했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이 헬리콥터는 약 6m가량의 직경을 가진 로터를 앞뒤로 평행한 위치에 장착하였으며, 그 외 베인을 활용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진 비행의 기능도 갖췄지만, 해당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는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브르귀나 꼬르뉘가 제작한 항공기 또한 불충분한 조종성과 안정성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그 이전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제점으로, 추후 헬리콥터 개발에 있어 큰 난제가 되어 새로운 도전이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이고르 시콜스키는 1909년과 19010년, 총 2년에 걸쳐 두 대의 헬리콥터를 개발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는 1910년경 두 번째로 도전한 헬리콥터 실험 이후 조종 안정성에 대한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에 덧붙여 재정적 한계 또한 맞닥뜨리게 되어 결국 고정익 항공기 분야로 옮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헬리콥터에 대한 열정이 도무지 식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브르귀가 그랬듯이 그도 고정익 항공기를 통해 성공적인 경험을 쌓으며 준비했고, 결국 1930년대에 헬리콥터 개발 분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날 헬리콥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고르 시콜스키는 1900년대 초부터 1930년까지 대략 30년의 기간 동안 헬리콥터에 대한 수많은 학문적 지식을 쌓고 발전시켜왔습니다.
미국의 항공 역학자인 테오도르 폰 카르만도 1916년 속박 시험비행을 실행하였으며, 해당 비행에서 고도 45m 높이에서 1시간 동안의 비행을 기록하였으나, 이어진 추락으로 인해 진행 중이던 개발이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실험은 로터의 위치와 무게중심에 대한 귀중한 경험을 쌓게 해 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후 1921년경, 미 육군은 러시아의 엔지니어인 조지 드 보데자의 지도 아래 첫 번째 헬리콥터 개발 프로그램에 착수하였습니다. 1922년 12월경 과거 라이트 형제의 실험이 진행되었던 미국 오하이오주의 데이톤에서 첫 비행을 시도하였습니다. 해당 실험에서는 총 네 개의 거대한 프로펠러 날개가 1분 42초 동안 돌아가며 고도 0.6m에서 1.8m 사이를 비행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비행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지만, 고유한 비대칭 문제와 기계의 복잡함 때문에 사업은 결국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빅터 축음기를 개발한 개발자 에밀 벌라이너 또한 1908년에 헬리콥터 실험에 도전하였으며, 1920년대 초에 그의 아들인 헨리 벌라이너와 함께 헬리콥터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벌라이너는 그 시대의 수많은 다른 설계자들과 마찬가지로 토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로터를 사용하였으며, 동시에 헬리콥터의 제어를 위해 수직 러더와 수평 베인을 추가 장착했습니다. 1922년, 벌라이너는 엔진을 동체 앞부분에 위치시키고, 중앙 동체 근처에 위치한 날개에 로터를 설치한 후 축과 기어를 사용하여 로터를 반대 방향으로 회전시켰습니다. 더불어 양력의 증감을 조절하고자 동체의 뒤쪽에도 프로펠러를 추가로 장착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로터의 회전면이 너무 작은 나머지 양력의 발생이 충분하지 못한 문제를 비롯해, 기체의 안정성 부족, 그리고 날개와 로터 사이의 잦은 간섭 현상 등의 수많은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자 개발을 결국 포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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